불계승·계가승이 뭐야? 바둑 초보도 이해하는 집 계산법

카테고리:
바둑 중계를 처음 보면 이상한 장면이 하나 있다.
두 사람이 한참 바둑을 두다가 한쪽이 돌을 내려놓는다. 해설자는 갑자기 “흑 불계승입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대국은 끝까지 두더니 “백 2집반승”이라고 한다.
체스처럼 왕을 잡는 것도 아니고, 오목처럼 돌 다섯 개를 먼저 연결하는 것도 아니다. 바둑판에는 흑돌과 백돌이 뒤엉켜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보고 승패를 결정하는 걸까?
핵심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둑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돌로 더 많은 영역, 즉 ‘집’을 확보하는 게임이다.
바둑에서 말하는 ‘집’은 무엇일까?
바둑판은 19개의 가로선과 19개의 세로선이 만나는 361개의 교차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흑과 백은 이 바둑판에 번갈아 돌을 놓으면서 자신의 영역을 만든다.
여기서 초보자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할 단어가 ‘집’이다.
쉽게 생각하면 내 돌로 둘러싸서 상대가 들어와 살아남기 어려운 영역이 내 집이다. 예를 들어 흑돌이 어떤 빈 공간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고 그 안에 상대 돌이 살아갈 수 없다면, 그 빈 교차점들이 흑의 집이 된다. 백도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집을 만든다.
물론 실제 바둑에서는 상대 돌이 들어와도 살아남을 수 있는지, 어느 쪽 영역인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곳은 없는지까지 따져야 한다. 단순히 돌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고 모두 확정된 집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바둑은 바둑판에 돌을 많이 올려놓는 게임이 아니다. 돌을 이용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상대의 영역을 제한하느냐가 중요하다.

바둑의 ‘집’은 돌의 개수가 아니라 자신의 돌로 확보한 영역을 뜻한다.
상대 돌을 잡으면 그것도 점수가 될까?
바둑을 보다 보면 상대 돌을 완전히 포위해 바둑판에서 들어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잡아낸 상대 돌을 보통 ‘사석’이라고 부른다.
한국식 계가에서는 이 사석도 중요하다. 잡아낸 상대 돌은 마지막에 상대의 집을 메우는 데 사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대의 집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그래서 대국 중 잡은 돌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고 따로 보관한다.
이 차이가 국제대회에서 큰 논란으로 번진 적도 있다.
2025년 LG배 결승에서는 커제 9단이 사석 보관 규정을 위반해 반칙패를 당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한국식 계가와 달리 중국식 계가는 살아 있는 돌과 둘러싼 빈 공간을 세기 때문에, 잡아낸 돌을 따로 계산에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규칙 차이가 논란의 배경에 있었다. 한국기원은 이후 사석 관리 위반에 따른 경고가 누적되면 반칙패를 선언하던 규정을 폐지했다.
초보자 입장에서는 우선 이렇게 기억하면 된다.
내 집을 최대한 확보하고 상대의 집을 줄이는 것이 기본이다. 상대 돌을 잡으면 집을 확보하는 데 유리해질 수 있고, 잡아낸 돌은 한국식 계가에서 상대의 집을 메우는 데 사용된다.
‘계가’는 마지막에 집을 세는 과정이다
대국이 거의 끝나면 더 이상 큰 싸움이 벌어질 곳이 없어진다. 서로 필요한 곳을 마무리하고, 어느 쪽의 집도 아닌 빈 교차점인 ‘공배’까지 정리하면 누가 얼마나 많은 집을 확보했는지 계산할 차례가 된다.
이 과정이 ‘계가’다.
한국식 계가에서는 먼저 바둑판에 남아 있는 죽은 돌을 제거하고, 잡아둔 사석과 죽은 돌을 상대의 집에 채워 넣는다. 그런 다음 복잡한 모양의 집을 세기 쉽게 정리해 흑과 백의 집을 계산한다.
예를 들어 계가 결과가 다음과 같다고 해보자.
흑 70집
백 66집
흑이 네 집 많으니 흑이 이긴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 바둑에서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계산해야 한다.
바로 ‘덤’이다.
백에게 왜 6집반을 더 줄까?
바둑에서는 흑이 먼저 둔다. 한 수를 먼저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이점이기 때문에 이를 보정하기 위해 백에게 일정한 집을 추가해 준다. 이것이 ‘덤’이다.
한국의 많은 프로대회에서는 흑과 백이 대등한 조건에서 대국하는 총호선에 백 6집반의 덤을 적용한다. 다만 덤은 모든 나라와 대회에서 동일한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기준은 해당 대회 규정을 확인해야 한다.
아까 예시로 돌아가 보자.
흑이 70집, 백이 66집을 확보했다면 바둑판 위의 집만으로는 흑이 네 집 앞선다. 하지만 백에게 덤 6집반을 더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흑 70집
백 66집 + 덤 6집반 = 72집반
최종적으로 백이 두 집반 앞서므로 결과는 ‘백 2집반승’이다.
여기서 ‘반’이 들어가는 이유도 재미있다. 덤을 6집반처럼 반집 단위로 정하면 일반적인 정수 집 계산에서는 양쪽 점수가 같아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반집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대국도 나온다.
흑이 실제 집에서 앞서더라도 백에게 주어지는 덤을 더하면 최종 승자가 달라질 수 있다.

흑이 실제 집에서 앞서더라도 백에게 주어지는 덤을 더하면 최종 승자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불계승’은 무엇일까?
여기까지 이해하면 계가승은 쉽다. 대국을 마친 뒤 집을 계산해 이기면 계가승이다.
그런데 프로 대국 기록에서는 ‘불계승’이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불계승은 말 그대로 계가까지 가지 않고 승부가 끝났다는 뜻이다. 대국을 두던 한쪽이 현재 형세를 판단했을 때 더 이상 역전하기 어렵다고 보고 패배를 인정하면 경기가 종료된다.
쉽게 말하면 항복이다.
축구처럼 정해진 종료시간까지 반드시 경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선수가 스스로 돌을 거둘 수 있다. 이때는 마지막 집 차이를 계산해 승부를 결정한 것이 아니므로 결과에 몇 집 차이로 이겼는지가 표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진서 174수 백 불계승’이라고 기록돼 있다면, 백을 잡은 신진서가 174수까지 진행된 대국에서 상대의 기권으로 승리했다는 뜻이다. 백이 몇 집 차이로 이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끝까지 계가했다면 ‘흑 1집반승’, ‘백 5집반승’처럼 구체적인 집 차이가 결과에 표시된다.
그런데 프로는 계가도 안 했는데 어떻게 진 걸 알까?
여기가 바둑을 처음 보는 사람이 두 번째로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아직 빈 곳도 많은데 왜 항복하지?”
프로기사들은 대국 도중에도 계속 형세를 계산한다. 어느 쪽 집이 얼마나 되는지, 앞으로 생길 집은 어느 정도인지, 남은 큰 자리는 어디인지 등을 판단하면서 다음 수를 선택한다.
물론 대국 중의 집 계산은 마지막 계가처럼 확정된 숫자만 세는 작업이 아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영역이 어떻게 바뀔지, 상대가 어디에 두면 집이 줄어들지, 앞으로 벌어질 싸움에서 얼마나 이득을 볼 수 있을지까지 예상해야 한다.
큰 돌이 잡혔거나 집 차이가 크게 벌어졌는데 역전할 만한 싸움마저 남아 있지 않다면 끝까지 채워보지 않아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로 대국에서는 초보자가 보기에는 아직 바둑판에 둘 곳이 많이 남아 있는데도 한쪽이 돌을 거두는 장면이 나온다.
반대로 차이가 아주 작다면 마지막까지 두고 계가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반집승’, ‘1집반승’ 같은 결과다.
이제 바둑 결과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바둑을 모를 때는 ‘흑 불계승’, ‘백 반집승’ 같은 표현이 암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리를 알고 나면 의외로 단순하다.
‘불계승’은 계가를 하지 않고 상대가 패배를 인정해 끝난 승리다. ‘계가승’은 대국을 마친 뒤 실제 집을 계산해서 결정된 승리다.
그리고 ‘백 2집반승’이라고 적혀 있다면 백이 덤까지 포함한 최종 계산에서 두 집반 앞섰다는 의미다.
이 정도만 알아도 바둑 중계를 보는 느낌이 꽤 달라진다. 누가 돌을 많이 잡았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쪽에 흑집이 꽤 크네”, “백은 덤이 있으니까 아직 모르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이해하면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런데 바둑 고수들은 저 복잡한 바둑판을 보고 어떻게 몇 집 차이인지 순식간에 계산하는 걸까?
그때부터 바둑이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참고자료 및 출처
연합뉴스 — 사석 규정 폐지한 한국기원에 중국 화답(202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