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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의 역사. 콘서트의 시작과 현재 1실링 공연에서 티켓전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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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요즘은 공연장보다 예매 사이트를 먼저 찾는다. 정해진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좌석을 선택하고 결제까지 마쳐야 하는데, 인기 공연이라면 화면에 좌석이 나타난 지 몇 초 만에 매진되는 일도 벌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표를 구하는 콘서트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음악을 듣기 위해 돈을 내고 공연장을 찾는 문화는 생각보다 오래됐지만, 처음부터 누구나 표를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수만 명이 모이는 스타디움 공연과 온라인 티켓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런던에서 1실링을 받고 음악을 들려주던 작은 공연장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콘서트.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음악은 있었지만, 누구나 갈 수 있는 콘서트는 없었다

음악의 역사는 콘서트보다 훨씬 오래됐다. 중세 유럽의 교회와 수도원에서는 종교의식에 음악이 사용됐고, 르네상스 시대의 왕실과 귀족들은 음악가를 고용해 연주를 즐겼다.

하지만 이런 공연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콘서트와 성격이 달랐다. 교회 음악은 종교의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고, 궁정의 연주는 왕실이나 귀족의 후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을 듣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선술집이나 개인 모임 등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었으므로 일반 사람들이 공연을 전혀 접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 중요한 차이는 음악 감상 자체를 목적으로 표를 판매하고, 그 수입으로 공연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직 널리 자리 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가 뚜렷해지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17세기 후반이다.

1672년, 1실링을 내고 음악을 듣다

1672년 12월 30일, 런던의 신문 런던 가제트(London Gazette)에는 음악 공연을 알리는 광고가 실렸다. 장소는 화이트프라이어스에 있는 ‘뮤직 스쿨(Musick-School)’, 공연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이 공연을 마련한 사람은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존 배니스터(John Banister)였다.

배니스터는 한때 찰스 2세의 궁정에서 활동했던 음악가였지만, 이후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방에 연주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관객을 맞았다.

입장료는 1실링이었다.

당시 기록을 남긴 로저 노스(Roger North)에 따르면, 관객은 돈을 내고 입장할 뿐 아니라 듣고 싶은 음악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정해진 곡을 조용히 감상하는 현대의 클래식 공연과 달리, 관객의 요구가 프로그램에 반영되는 흥미로운 방식이었던 셈이다.

이 공연을 역사상 최초의 음악회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전에도 다양한 음악 모임과 공개 연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배니스터의 공연은 입장료를 받는 정기적인 공개 콘서트가 상업적으로 운영된 초기 사례로 음악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공연의 규모보다 운영 방식이다. 왕이나 귀족 한 사람의 후원에 의존하는 대신, 음악을 듣고 싶은 여러 관객이 입장료를 내어 공연을 유지하는 구조가 등장한 것이다.

이 작은 변화는 이후 유럽의 공연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672년 존 배니스터는 런던에서 입장료 1실링을 받는 공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귀족의 음악에서 ‘관객의 음악’으로

배니스터가 런던에서 공개 공연을 열고 약 50년이 흐른 1725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콩세르 스피리튀엘(Concert Spirituel)이라는 공개 콘서트 시리즈가 시작된 것이다. 이 공연은 종교적 기념일 등으로 오페라 공연이 열리지 않는 날에 관객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마련됐다.

창립자인 안 다니캉 필리도르(Anne Danican Philidor)는 튈르리 궁전의 공간을 활용해 유료 공연을 운영했다. 처음에는 종교음악이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악곡과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도 무대에 올랐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공개 콘서트가 일회성 행사를 넘어 지속적으로 관객을 모으는 공연 사업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관객은 공연을 보기 위해 비용을 지불했고, 운영자는 프로그램과 연주자를 구성해 다시 관객을 끌어들여야 했다.

18세기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는 이처럼 입장권이나 정기 회원권을 통해 운영되는 공연이 늘어났다. 물론 귀족의 후원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음악가에게는 궁정 밖에서 활동할 기회가 넓어졌고 관객에게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공연을 선택할 여지가 생겼다.

이런 변화는 19세기 대형 콘서트홀과 전문 공연단체의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뿐 아니라 공연을 기획하고, 공간을 마련하고, 관객에게 표를 판매하는 일까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콘서트는 어떻게 수만 명 규모가 됐을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콘서트는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았다. 이번에는 공연을 운영하는 방식뿐 아니라 관객을 모으는 방법과 공연장의 크기가 달라졌다.

레코드와 라디오가 보급되자 사람들은 공연장에 가지 않고도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역설적으로 이 변화는 라이브 공연에 대한 관심도 키웠다. 이미 목소리와 노래를 알고 있는 가수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천 명, 수만 명을 한곳에 모으려면 공연장만 넓혀서는 해결되지 않았다. 멀리 앉은 관객에게도 음악이 들리도록 음향을 증폭해야 했고, 무대와 조명, 관객 동선을 관리하는 기술도 필요했다.

이런 변화가 선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1965년 8월 15일 비틀스의 뉴욕 셰이 스타디움 공연이다.

당시 공연에는 약 5만 5,600명의 관객이 모였다. 야구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들의 함성은 너무 커서 연주자들조차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 공연이 최초의 경기장 콘서트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아티스트의 공연에 수만 명이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후 대규모 스타디움 공연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됐다.

이후 음향 장비와 무대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기장 공연은 점차 정교해졌다. 오늘날에는 대형 화면과 조명, 이동식 무대, 관객 참여형 연출이 결합해 공연장 어디에 앉아 있든 하나의 거대한 무대를 경험하도록 설계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Eras Tour나 콜드플레이의 월드투어처럼 여러 국가의 대형 공연장을 순회하는 방식도 이러한 산업 구조 위에서 가능해졌다.

17세기 런던의 작은 방과 오늘날의 스타디움은 규모가 비교되지 않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같은 공간에 모여 음악을 듣는다는 점이다. 달라진 것은 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운영 규모였다.

1965년 비틀스의 셰이 스타디움 공연은 대형 스타디움 콘서트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표를 사는 방법도 완전히 바뀌었다

공연장이 커지고 관객이 늘어나자 티켓을 판매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과거에는 공연장 매표소나 지정 판매처를 직접 찾아가 표를 구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여러 도시에서 열리고 판매해야 할 좌석이 많아지면서, 어떤 자리가 팔렸고 어떤 자리가 남았는지 빠르게 확인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컴퓨터를 이용한 발권 시스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여러 판매처가 좌석 정보를 공유하고, 이미 판매된 좌석이 중복으로 예약되는 일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티켓마스터(Ticketmaster)다.

1976년 설립된 티켓마스터는 처음부터 인터넷 예매 회사였던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해 공연 티켓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사업으로 출발했다. 회사의 공식 연혁에 따르면 첫 콘서트 발권은 1977년 뉴멕시코대학교에서 열린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의 공연에서 이루어졌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예매 방식은 한 단계 더 바뀌었다. 티켓마스터는 1995년 웹사이트를 열었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티켓을 판매했다.

이제 관객은 공연장 매표소를 찾아가지 않고도 집에서 좌석을 확인하고 표를 살 수 있게 됐다. 이후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모바일 예매와 디지털 티켓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라인 예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인기 공연의 경우 정해진 예매 시간에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속하면서 새로운 경쟁이 생겨났다. 공연장 앞에 길게 늘어섰던 줄이 사라진 대신, 예매 사이트에는 접속 대기열이 등장한 것이다.

온라인 발권에는 또 다른 과제도 있다.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대량 구매와 부정 재판매를 막아야 하고, 실제 관객이 안전하게 티켓을 전달받을 수 있도록 인증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티켓 판매 시스템은 단순한 결제 기능을 넘어 대기열 관리, 부정 구매 방지, 모바일 입장 확인까지 담당하고 있다.

공연장 앞의 줄은 사라졌지만 경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티켓 전쟁은 온라인에서 벌어집니다.

줄 서던 전쟁에서 클릭 전쟁으로

350여 년 전 존 배니스터의 공연을 보려던 사람은 1실링을 들고 런던의 작은 공연장을 찾았다. 오늘날의 관객은 스마트폰으로 수만 석 규모의 공연장 좌석을 확인하지만, 인기 공연의 표를 구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장소와 방법은 크게 늘어났다. 반면 사람들이 꼭 보고 싶어 하는 공연의 좌석 수는 한정돼 있으니, 구매 과정이 편리해졌다고 해서 경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콘서트의 역사는 단순히 공연장이 커진 이야기가 아니다.

왕실과 귀족의 후원 아래 이루어지던 음악이 입장료를 내는 관객을 만나고, 녹음과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가수가 거대한 경기장에 서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공연을 기획하는 방식과 표를 판매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달라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에는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자가 직접 들려주는 자리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1672년 런던의 1실링짜리 공연과 오늘날의 치열한 티켓팅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왜 음악을 직접 듣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일까?

녹음된 음악을 언제든 들을 수 있는 시대에도 콘서트가 계속 인기를 얻는 이유는, 그날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WDR(독일 공영방송) — 1672년 12월 30일 존 배니스터의 공개 콘서트
    존 배니스터의 활동, 1실링 입장료, 관객의 신청곡과 공개 공연의 역사적 의미.
  2. A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 John Banister
    1672년 12월 30일 런던 가제트 공연 광고와 배니스터의 공개 콘서트 기록.
  3. Larousse 음악사전 — Concert Spirituel
    1725년 파리에서 시작된 공개 콘서트 시리즈와 운영 방식의 발전.
  4. MLB — History of the Beatles’ 1965 Concert at Shea Stadium
    비틀스의 1965년 셰이 스타디움 공연, 관객 규모와 대형 공연 산업에 미친 영향.
  5. Live Nation — Ticketmaster의 역사
    1977년 첫 콘서트 발권, 1995년 웹사이트 개설, 1996년 첫 인터넷 티켓 판매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