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극장가에서 흥행 중인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개봉 직후 예상치 못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는 9월 23일 개봉해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27일까지 누적 관객 약 156만 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그런데 흥행과 함께 빠르게 따라붙은 말이 있다.
바로 **‘역사왜곡 논란’**이다.
영화를 둘러싼 비판은 정치권과 관련 단체로 번졌고, 제작진에 대한 고발까지 이어졌다. 반면 제작진과 허진호 감독은 영화가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적이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화의 어떤 부분 때문에 이런 논란이 시작된 걸까?
영화의 출발점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암살자(들)〉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실제로 존재한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겨냥해 총을 발사했고, 이 과정에서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 정부 당국은 사건의 배후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그 산하 조직이 있다고 판단했다.
문세광은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뒤 같은 해 12월 사형이 집행됐다.
영화 역시 이 실제 사건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암살자(들)〉은 당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의 작품은 아니다.

논란의 핵심은 영화가 던진 ‘또 다른 가능성’
영화는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와 기자들을 등장시키며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건의 결론 이외에 다른 가능성이 존재했는지를 추적한다.
문제가 된 부분도 여기다.
극중 일부 인물들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 측 또는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하나의 가설로 제기한다.
영화가 이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확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라고 명시적으로 지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비판하는 쪽에서는 이런 설정 자체가 관객에게 실제 역사와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 제목 역시 한 명을 뜻하는 ‘암살자’가 아니라 복수형인 **〈암살자(들)〉**이다.
제작진을 고발한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 역시 제목과 영화 속 설정이 문세광 외에 다른 암살 주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이 나왔나
논란이 커지면서 정치권과 관련 단체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영화가 역사적 비극을 왜곡했다는 취지로 비판하며 제작사의 사과와 상영 중단을 요구했다.
일부 정치인들도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실제 역사적 인물과 결합한 점을 문제 삼았다.
논란은 법적 절차로도 이어졌다.
9월 29일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허진호 감독과 제작진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다만 고발이 이루어졌다는 것과 실제 혐의가 인정됐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고발장이 제출됐다는 사실까지다.

제작진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
제작진의 입장은 다르다.
제작진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암살자(들)〉이 1974년 발생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여러 기록과 자료를 조사한 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만든 극영화라고 설명했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참고했지만 가상의 인물과 상황 역시 결합했다는 것이다.
또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즉 제작진의 주장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허진호 감독도 직접 반박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허진호 감독 역시 9월 30일 직접 입장을 밝혔다.
특히 영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는 내용을 담았다는 비판에 대해 그런 내용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허 감독은 과거 다큐멘터리와 여러 자료에서 제기됐던 당시 권력기관의 개입 가능성을 영화적인 **‘가정’**으로 활용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개봉 전 인터뷰에서도 허 감독은 이 작품을 감춰진 진실이나 배후를 밝혀내는 영화로 접근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오히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람들을 통해 1970년대라는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결국 쟁점은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놓고 보면 논쟁의 핵심은 비교적 명확하다.
영화가 소재로 삼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다.
반면 영화 속 형사와 기자들이 사건을 추적하며 제기하는 여러 가능성에는 창작된 인물과 상황, 영화적 가설이 포함돼 있다.
비판하는 쪽은 실제 인물과 사건을 다루면서 확인되지 않은 가설을 제시하면 관객이 이를 역사적 사실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제작진은 특정 인물을 배후로 지목하지 않았고 가설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창작의 영역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영화 한 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창작자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란’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